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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독서리뷰] 도리스의 빨간 수첩 :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소설

by 셜리 2020.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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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책을 읽는 편이지만, 내가 잘 안 읽는 분야가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소설을 좀 읽어보자라고 서점에서 소설 코너 앞에 서보면 참, 막막하다는 느낌이 첫 번째로 다가오는 터라, 시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변에서 읽는 소설들을 나도 읽어보면 되겠다로 소설책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먼저 읽은 책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는데, 초보 소설 리더에게는 좀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매우 별로였으니까요. 아무리 훌륭한 상을 탄 소설이라 하더라도 내게는 그저 "너무 작가주의적인 느낌이 드는" 우울한 이야기로만 보였습니다.  워낙 안 읽던 소설 분야의 시작으로 좋지 않았던 탓일까요? 그 이후로 소설을 멀리 하다가, 최근에 지인이 추천받은

도리스의 빨간 수첩

을 손에 들었네요. 이북으로 샀으니, 귀를 열었다고 해야 맞겠네요. ㅎㅎㅎ

 

이 소설은 소피아 룬드베리라는 스웨덴 작가의 소설로, 스톡홀름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96세의 도리스 할머니의 수첩에 적힌, 고인이 된 이름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죽음을 앞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할머니의 이야기라 조금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탓이 큽니다.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들이 이 소설에 집중하기 어렵게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추천한 지인의 평소 취향이 어느 정도 나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초반의 불편한 기분은 조금씩 읽는 것으로 극복해나갔습니다.

 

하지만 중반에 들어서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점점 길게 읽게 되더군요. 어떤 날은 그 소설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되기도 했습니다. 궁금해서 계속 넘기다 보니, 새벽이 한참 넘어가고 있는 걸 몰랐거든요.  

"격려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위한 글"

이라는 추천사처럼 위로가 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책은 우울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걱정도 괜한 기우가 되었습니다. 도리스 할머니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과 전쟁 등의 다양한 기억들을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죽기 전에 사랑하는 손녀에게 희망과 사랑을 남겨주고자 쓰는 이야기입니다. 나도 이제 인생을 절반 넘게 살아낸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리스 할머니에게는 자신이 죽고 나면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점에서 내가 7살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그 어린 나이에 나는 그 점을 굉장히 슬프게 생각했었거든요. 언젠가는 내가 아는 사람들, 특히 부모님이 내 곁에 있지 않을 것이고, 나를 알던 사람들 모두 사라지고, 나 역시도 사라지게 되면, 나란 사람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휩싸여서 일주일 정도인가 우울하게 지냈답니다. ㅋㅋㅋ 네, 7살짜리 아이가 말이죠.

 

제가 독후감을 아직 잘 쓰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아무튼 위로가 되는 책임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모 정치인의 자살로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것조차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터라, 이 소설의 한 구절을 정말 짧게 스포해봅니다.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이크 파커 사망 ( 도리스 할머니를 성폭행한 인물)
(전쟁 중에) 마이크가 내 옆을 지나 떠내려갔어. 나는 눈으로 그를 좇았어. 그의 말쑥한 수염에 검붉은 피가 두껍게 덮어 있었어. 총에 맞은 그의 머리가 구명조끼 가장자리로 축 늘어져 있었지. 그의 이마는 물속에 반쯤 잠겨 있었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 그것뿐이었어.

피해자분이 이 글을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무리 주변의 상황이 엿같이 돌아간다 해도 말이죠.

■ 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지음 |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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