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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29일] 3개월 동안 스파게티만 먹였지. 2004년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의 캄비아노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3개월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진행했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나의 지도 교수님 회사로 파견되었다. 그 마을에는 교수님 이름이 떡하니 크게 쓰여져 있는 공장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교수님의 부모님 회사 건물이었는데, 내 교수님과 친구분의 회사가 그 공장 한켠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당시에 대학원 내에서 교수님의 별명은 '옥동자'였다. 이탈리아 지방 도시의 유지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그런데, 교수님은 이 별명을 알고 계셨는지는 궁금해지네. 인턴쉽으로 이탈리아를 가기로 결정되었을 때, 준비거리로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이 "3개월 동안 무얼 먹지?" 였다. 이미 먼저 인턴쉽을 갔다온 선배들의 말을 들으니, 마을이 .. 2022. 1. 12.
[글쓰기28일] 미접종자의 소수 의견 나는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다. 그 이유를 짧게 말하자면, 원래 백신 안 맞는다. 그렇다. 나는 학생 시절에 맞았던 의무 접종 이외에는 스스로는 백신들을 맞지 않고 살아왔다. 그저 일관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기존 백신들도 꺼리는 마당에, 이 듣보잡 코로나 백신들의 실험체가 되고 싶지 않다. 접종한 덕에 코로나 감염자와 접촉해도 격리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글쎄? 백신을 맞은 대가치고 너무 박하다. 그 정도로는 전혀 접종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1. 접종 여부는 개인의 신체 결정권에 맡겨야 한다.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이다. 미접종자가 감염 위험이 높다고 치더라도 감염자 취급하는 것은 인신공격과 다를 바 없다. 그건 이미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 우리는 수천 .. 2022. 1. 11.
[글쓰기27일] 작심일년, 나답게 살아보자! 3년 전 사업을 정리하고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으니, 내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방울방울, 기포처럼 올라왔다. 그중에서도 주로 나 자신에 대한 실망들이 그 기포들을 타고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비루했던 사업을 정리하다 보니 후회되는 게 어디 한두개였으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 후회의 이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후회에는 사업 자체는 포함되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한 점들이 많았다. 나를 성장시킨 것은 분명 사업이었으니까. 그보다는 미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고 보내야 했던 시간들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지금은 왜 그랬을까 보다는 다르게 살아보자라는 마음이다. 이미 다르게 살아보려다 작지 않은 실수들을 많이 했지만, 여전히 방향은 맞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하고풍거 삭다해라 철인왕.. 2021. 12. 28.
[글쓰기25일] 나의 망상 : 어디선가 좀비가? 며칠 전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어디선가 좀비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좀비 망상이 머릿속에 떠오른 적이 있긴 했었지만, 이번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런 생각은 현실이 아니라는 자각이 뚜렷함에도, 어느새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하필이면 '좀비'일까? 예전에 생리전증후군으로 고통받을 때마다 겪었던 이상한 망상이었다. 평상시에는 징그러워서 끝까지 볼 수 없던 좀비 영화였다. 그러나 생리로 고통을 받을 때는 희한하게도 오히려 좀비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 정말 이상하게 보이겠지? 스스로도 이상했지만, 정말 그랬다. 생리할 때마다 되살아나는, 그 비릿한 고통들을 좀비들의 고통에 찬 괴성에 투영했던 걸까? 이유도 모른 채 두 번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겨가며 고생.. 2021. 12. 28.
[글쓰기24일] 요즘 낮에 살 집 보러 다닌다. 나는 요즘 낮에 살 집을 찾고 있다. 그런 지도 거의 2년이 다 되었다. 집 보러 다닐 때는 가격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비싼 집을 살 능력이 되냐고? 그건 아니다만, 집 보는데 입장료 받지도 않으니 당당하게 보러 다닌다. 코시국 덕분에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27억짜리 집이든 5억짜리 집이든 생각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선은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27억짜리 집의 디테일은 매우 고급지긴 했다. 그러나 집의 가치는 그 집의 위치와 전체적인 집 구조가 더 중요한 터라, 잘만 찾을 수 있다면 싼 집도 더 가치 있을 수 있는 희망으로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원하는 꿈의 집은 어떤 곳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2021. 12. 28.
[글쓰기26일] 나의 망상2 : 꿈 속이지만 실감났던 싸움 꿈속에서 이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니가 하는 일, 그거 오래 못가, 그리고 결국 다 망할 거야" 그 말의 옳고 그름은 뒤로 하고라도, 당연히 화가 났다. 나는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하냐, 그게 이모가 할 소리냐고 따졌다. 그럴 때마다 이모는 당연한 소리를 한 것뿐인데, 무엇이 잘못이냐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따지는 네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서 나온 말도 있었다. '그건, 너는 어차피 잘 안돼도 괜찮으니까 그런 거다. 니가 잘되야할 이유가 없지 않냐. 못되어도 너 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말싸움이 꿈에서 깨어나며 종료되었다. 꽤나 억울함과 분노를 주는 꿈이었다. 어찌나 생생하게 꾸었던지, 생각날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실제의 이모는 내게 이.. 2021. 12. 28.
[글쓰기 23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나이를 많이 따진다. 젊을 때는 나이별로 해야하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강요받는 것에 분노하기도 했다. 어느새 '라떼'보다는 많이 덜해져서 솔직이 전보다 편해졌지만, 나도 그런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살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본래 친구처럼 지냈던 부모님을 둔 탓에 나이에 비해 덜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서른 살 안팎에 진로 변경을 한 것이 더 그렇게 살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역행하는 삶이 되었으니, 이상한 사람이라는 시선도 참 많이 받았다. 어린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게 자랑이냐?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그 곳에서 면접을 무려 2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1차 면접에서 받은 질문들 중에.. 2021. 12. 13.
[글쓰기 22일] 남자에 대한 밍밍한 수다 대화가 불편한 남자 이전 사무실에서 옆 사무실에 있던 대표님과 나는 가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특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웃과 잘 지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이 분과는 대화가 잘 안되는구나'라고 느껴졌다. 그 대표님이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이제 반세기를 지내서인지,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생각의 차이도 커지는 탓일 게다. 그런데 그 분에게 내 이야기의 내용은 그닥 중요하게 느끼지 않는 듯, 그저 내 음성과 표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느낌 탓에, 그 시간이 내게 소모적이라고 자주 느껴졌다. 그분이 내게 호감이 있는 것같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모를 일이다. 다만 그런 남자들을.. 2021. 12. 12.
[쇼피파이 홈페이지 운영] 이메일 주소 연결하기 쇼피파이를 저의 홈페이지로 사용하고 있던 터라,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에 대한 설정들을 마치고나니, 솔직이 잘 돌보지 않게되었네요. 하지만 가끔 들어가서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조금씩 고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몇건의 주문도 받았답니다. 새로운 제품들도 지속적으로 올리고 그래야 하겠죠, 그래야 하겠죠........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면 되죠 머. ㅎㅎㅎ Domains 메뉴의 위치 변동 전과 달리 Settings의 서브 위치로 이동해서, 한참을 찾았네요. 쇼피파이 고객센터가 몹시 친절한 편이긴 하지만, 신생 기업이라 그런가, 잠깐 안보면 바뀌는 게 꽤 많네요. 전에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주소를 연결하느라 설정하고는 오랜만인데, 제가 본래 갖고 있던 도메인을 가비아 사이트로 가서 DNS를 설정해주었었답니다. 이.. 2021. 12. 9.
[글쓰기 20일] 이건 네 거야 : 내 것이라 믿었던 괘종시계 아버지는 장난기가 많은 분이셨는데, 특히 딸을 대할 때 장난기가 더했다. 게다가 아버지에게는 나 말고도 아들이 둘이 더 있었는데, 둘 다 그런 아버지를 닮은 오빠들이었다. 그러기에 내 어린 시절은 항상 투닥투닥 우당탕의 연속이거나, 속고 속이는 장난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을 정도. 그런 아버지가 이란이라는 나라에서 돌아오셨을 때, 내게 선물이라며 '괘종시계'를 주셨다. 아버지의 본업은 따로 있었지만 수영 분야에서도 국제심판이라는 일도 하고 계셨기에, 올림픽 참가차 이란에 다녀오셨던 것이다. 참 오래된 얘기다. 그때만 해도 이란이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몹시 낯설고 신기한 나라인 이란에서 커다란 괘종시계를 사들고 오셨다. 그게 귀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내게.. 2021.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