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포틀랜드 도심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떨어진 외곽지역인 투알라틴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다. 3월 중순에 처음 도착하고는 시차 적응 문제로 열흘 가까이 고생했었다. 기본적으로 불면증이 심했던 터라, 시차 적응을 빠르게 해내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인 건 친구 남편이 한의사라, 지어준 처방약을 먹으며 며칠을 지냈더니 불면증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되었다. 되려 지금은 9시만 넘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나 원래 야행성인데?
포틀랜드가 워낙에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라 공기가 참 달다. 그래서인지 지낼수록 내 몸이 정화되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3개월을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몹시 불편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 온 지 한 달이 되고 있는데, 오래된 습관적 불안증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나를 가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렇게 별거 안하고 지내도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그저 세월 좋게 딩가딩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건 사업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뭐라도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한 듯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나는 아침마다 여기에서 간단한 체조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면 고양이와 친구가 맞이해준다. 친구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친구 남편의 클리닉으로 향한다. 사실 클리닉의 인터넷 사정이 더 좋아서, 그곳에서 나는 컴퓨터를 열어놓고 평소 하던 대로 재테크 관련 정보를 탐색한다. 변변찮은 수준의 주식 투자이긴 하지만, 재미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찍어둔 영상을 정리한다. 사업을 정리하고 하던 창업 멘토링은 봄이 비수기 계절이라 포틀랜드에도 부담 없이 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쓸데없이 하고 있는 일들은 많은 듯도.
주말에는 친구와 어딘가 좋은 곳에 가기도 하고, 친구 차를 몰고 주중에 혼자 포틀랜드 근교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석 달 여행의 좋은 점은 오늘 잘 구경 못해도 내일 다시 오면 되지 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관광이 목적은 아니라, 뭔가를 꼭 많이 봐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그보다는 경험에 더 방점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meetup사이트에서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있다. 본디 혼자를 더 선호하는 터라 주저함이 많았지만, 그래도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며 포틀랜드에서 친구에게 빌붙어있는 상황에서 머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선은 이번 주 수요일에 줌으로 하는 모임을 시작으로 가리지 않고 오프 모임에까지 참여해보려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의미 있는 길을 찾게 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방향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자리 걸음하기가 쉽다. 나는 이미 그렇게 3년을 보냈기에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젊을 때라면 우연히라도 얻어걸리는 게 있겠지만, 나이 들수록 그럴 기회는 급속히 줄어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향을 모르겠는 나는 꾸물꾸물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매일 무언가 작은 거라도 해내는 나에게 용기를 주기로 했다.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것이고, 나는 운이 좋은 거니까. 그저 행복하게 부지런하게 사는 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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