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불을 끄면 늘 그렇듯이 잠이 확 달아나버린다. 다시 작은 스탠드를 밝히고는 넘들이 다녀왔다는 후기들을 쭉 훑어보며 내일의 주요 행선지를 앨버타 아츠 스트리트(Alberta Arts Street)로 정했다. 차를 몰고 이동하는 동선으로, 그 중간 여정에 블루스타(Blue Star) 도넛 가게, 조지 로저스(George Rogers) 공원, 윌러밋(Willamette) 공원 등을 추가했다.
친구의 클리닉에서 차를 몰고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조지 로저스 공원. 아름다운 풍경 외에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지만,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을 던져주는 곳이었다. 포틀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새들에게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공원이라, 다음에 어디를 가든지 여기에 꼭 들러서 힐링의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으로 10분 정도 운전해서 윌러밋 공원에 도착했다. 여기도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평범한 곳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평범한 공원과는 많이 다르게, 요트를 탈 수 있는 곳이었다. 주차장에 요트를 메고 온 흔적이 보이는 차량들이 쭉 늘어서 있다. 다른 한쪽에는 울타리가 쳐진 운동장 같은 곳에서 뛰어노는 강아지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지나가는 구경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풍경이다.
이후에 20분 정도 운전으로 더 올라가니, 드디어 포틀랜드의 다운타운의 앨버타 아츠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차를 도로 한켠에 눈치껏 세워두고, 이렇게 아무 데나 주차해도 괜찮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생각보다 차들이 여기저기에 도로 옆에 늘어져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P'가 보이지 않아서, 주변에 물어봤다. 여기에 주차해도 문제없는지. 본인은 여기 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 보인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차를 뒤로 하고 상가들이 보이는 중앙 도로를 향해 걸어 나왔다.
처음 인상은 그래피티가 즐비하다는 정도, 내 눈에는 허름해 보이는 상점들이 늘어져 있었다. 주로 음식점들이었는데,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라서 어디나 그렇구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예술의 거리인데 어째 갤러리가 하나 안 보이나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갔다. 작은 허브 상점에 들러서 라벤더 향 피우는 것도 사고, 시더향 나는 말린 식물도 샀다. 말린 식물을 태워서 향도 내고 공기 정화 목적으로 보이는데, 아직 안 써봐서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게 허름한 거리를 한참을 걷다가 길 건너 반대편으로 다시 거슬로 올라가니, 그제서야 갤러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이지 닫힌 상점이 아직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래피티로 무섭게 그려진 문 뒤로 무엇이 있는지 감히 문을 열어볼 용기가 안나는 가게들도 상당히 보였다. 일단 창문이 없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그런 사이사이로 소품 가게들을 둘러보다가 친구 딸 선물로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코스타를 샀다. 좋아할지 모르겠다. 나도 이제 10대의 마음을 모르니. 그래도 친구가 기르는 고양이 케빈을 닮아서 좋아하지 않을까?
반대편 길거리는 그래도 예술의 거리다 싶은 상점들이 이어져 있었고, 내가 처음에 주차했던 골목을 뒤로하고 좀 더 나아가니, 한국의 가로수길 같은 거리들이 펼쳐졌다. 그랬다. 내가 주차한 골목을 중심으로 같은 앨버타 거리였지만, 조금은 많이 다른 풍경이 갈라져서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조금 럭셔리해진 거리를 걷다 보니, 바리스타라고 쓰여있는 커피가 커피 맛집 포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블루스타에서 도넛과 함께 커피를 마셔야 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두어 시간 정도 아이쇼핑만 하고 그 거리를 떠났다. 내겐 아직 다시 올 시간이 있으니까.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일단 포틀랜드 하면 부두(Voodoo) 도넛과 블루스타(Blue Star) 도넛을 블로그마다 얘기하길래, 그중 하나는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블루스타로 향했다. 부두 도넛은 신기하고 예쁜 도넛은 많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나마 덜 달다는 블루스타에서 도넛 2개와 커피를 주문했다. 현금으로 지불하려니, 카드만 받는단다. 그 와중에 팁도 몇 프로 줄지 선택하라 하고. 이런, 테이크아웃에 팁을 받다니, 나는 그나마 가장 낮은 퍼센트였던 15퍼센트를 선택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보니, 그런 경우에는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한다. 몰랐으니 머.
그렇게 블루스타를 마지막으로 차가 막히는 시간이 되기 전에 서둘러 친구 사무실로 향했다. 포틀랜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의외로 주차 인심이 후했다는 것이다. 블루스타 근처도 1시간까지는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니까. 도대체 누가 한 시간을 체크한다는 것인지, 아무리 주변을 돌아봐도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나는 거기 30분도 머물지 못했었어서 테스트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간에는 주차자리 찾기 어려웠겠지. 그리고 또 하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점도 내게 좋은 기분을 주었다. 미국의 단점이 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기 무섭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포틀랜드와 그 근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 말로는 요즘은 포틀랜드도 일부 지역은 부랑자들이 늘어나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니 주의는 해야겠다. 그리고 도시에서 5시 넘어서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뀔 수 있으니, 미국 여행자는 꼭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주변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주변 사람들의 인상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면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오는 게 여러모로 좋다. 가벼운 금전 날치기 정도는 쉽게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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