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 고양이 캐빈이 참으로 교태롭다. 아침부터 캐빈의 애정을 구걸하다가 길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도 돌 겸, 한국에 있는 오빠가 부탁한 심(sim)카드도 베스트바이에서 사볼 겸해서. 아래 지도 이미지는 내가 돌아다닌 전체 경로 중의 일부이다. 최종 도착지를 베스트바이(BestBuy)로 설정하고 지도를 보며 움직였지만, 곧바로 가기보다는 동네 구경 삼아 이리저리 경로를 벗어나 돌고 돌아다녔기에, 전체 경로를 그려보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대충 저런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 정도에서 느긋한 여행자의 걸음을 시작했다.
오고 가는 길에 주택가가 쭉 늘어져 있었었는데, 오로지 집들만 있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한국이라면 중간 중간에 편의점이나 카페라도 보였을텐데. 인상적인 것은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데 불안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 대체로 미국은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눈에 띄는 행동이기도 해서, 마주치게 되는 인간들은 대부분 부랑아이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혼자 걷다 보면 무서워지기도 하는데, 여기 포틀랜드 근처 주택가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작은 공원 하나를 만났다. 브라운즈 페리 파크(Brown's Ferry Park). 그저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소박한 공원이라도 그 앞에서는 투알라틴 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친구가 자기 카약을 타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좀 용기가 필요할 듯하다. 그래도 조금은 갈등이 된다.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게 사실 좀 만만해 보여서.
조용히 걷다 보니 신비로운 비밀의 숲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걷다가 강가 앞에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니, 세상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돌고 돌아 걸어서 베스트바이가 있는 쇼핑몰 구역으로 들어었다. 어렵사리 1 달러 짜리 GSM 어쩌고 하는 심카드를 사는 데 성공했으나, 나중에 톡으로 오빠에게 물어보니, 내가 잘못 샀단다. 나중에 다시 도전해봐야지. 시간은 내게 아직 많으니.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 섰다. 세븐일레븐에서 음료수 하나 사서 목을 축이고 싶었서였다. 아마 1시간 반 정도 걸었을 거다. 그런데 기다려도 신호가 바뀌지 않았다. 잠시 생각했다. 아, 한국과 다를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신호등을 작동시키는 버튼이 보인다. 꾸욱. 그렇게 건너서 세븐 일레븐에 도착. 여기서도 나는 튀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음료수 뚜껑을 따고는 쓰레기를 버리려고 주변을 둘러봐도 당최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왜 눈에 띄는 행동이냐고?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인지 어서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눈빛들. 점원에게 물어보니, 자기에게 달란다. 고맙다고 하고 쓰레기를 손에 쥐어주고 나왔다.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보통 쓰레기통은 상점 밖에 있단다. 역시 한국과는 다르다.
음료수를 마시며, 되돌아오는 길은 아까보다 빠르게 지나 가진다. 이미 아는 길이어서 지체할 것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공원을 지나고 주택가를 다시 지나, 골짜기로 들어서다 몇 번을 남의 집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면 총 맞을 수도 있다는데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 집들은 담벼락이 뚜렷하지 않은 편이라 내 눈에는 입구가 골목으로 보였던 탓에 자꾸 남의 집에 들어간 것이었다. 어째튼 내게 총구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동네 한바퀴를 무사히 끝냈으니, 오늘의 소소한 모험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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