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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회고록

03. 쉬고 있는 사업가 : 폐업 후 잘 쉬는 방법

by 셜리 202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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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업 정리 후에 머하고 지내는지?

라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내 앞글을 읽은 독자 거나,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분이라면.

 

사업을 정리하게 된다면, 당장 시작할 것은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머랄까, 그 어떤 것에도 욕구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들이 흔히 좋아하는 쇼핑에도 아무런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면 막연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주로 돈을 덜 쓰거나, 나름의 투자라는 변명이 붙는 것들을 하게 되더라. 그리고 초반에는 아무도 쫓아오지도 않는데, 서두르는 습관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독여야 했다.

"괜찮아, 이젠 그 무엇도 급할 게 없어, 그 무엇도 완성하지 않아도 돼."

라고. 어쩌면 가끔 듣는, 그 소박한 "휘게 라이프"가 내게 필요했던 것 같다.

 

App Sticker, Tommy & Garry on App Store

 

1. 독서와 아이쇼핑

작년 초반에는 독서를 주로 많이 했었다.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책을 가까이하는 편은 아니었던 터라, 나의 살아온 인생 중에 이때가 가장 책을 많은 읽게 되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나니,책값도 점점 부담이 되고 해서, 나중에는 집에서 가까운 백화점의 큰 책방에 가서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기도 했다. 책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백화점 구경도 하면서,

, 내가 이런 걸 끊고 살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매욕구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 백화점은 내게 일종의 미술 전시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저, 좋군, 좋아…이러면서, 이런 옷 구경하는 것 자체도 얼마만인가, 나도 여자였는데, 이런 걸 안 하고 살았네, 머 이런 중얼거림과 함께 그 생소한 기분 자체를 힐링으로 즐겼다.

 

2. 이사와 부동산 투자

당시에 환경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생각하면서, 부동산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 이전에도 사실 나는 스트레스받거나 하면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특이한(?) 취미가 있었다. 어찌 보면 자연스레 기본적인 부동산 스터디가 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사업을 하고 있으니, 사무실 투자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있어왔다. 어차피 이사 갈 거라면, 월세를 내느니, 지식산업센터 같은 곳의 사무실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업도 어려워서 정리했다면서, 무슨 돈이 있어서?

라는 의문점이 생기겠지만, 전체 비용의10% 정도만 부담하고, 비교적 저리로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업을 정리한 분들 대부분 빚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매입하려는 사무실 자체를 담보로 대출을 하는 거라 대출할 때 크게 제약도 없어서 기존 빚이 있더라도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크게 만족하고 있다. 이전 사무실보다 넓고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했지만, 이자 비용은 월세보다 싸기 때문이다. 은행을 집주인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그래도 투자니까 손해보지 않도록 최대한 투자 분석을 해야 하는 건 중요하겠지만. 다행히도 현재 시세는 인테리어 비용을 더해서 계산해봐도 남을 정도로 올랐다.  이런 건 다 나중에 팔아봐야 알겠지만.

 

3. 뜻밖의 인테리어 공부

새 사무실에 투자하고 보니,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 사무실이란 공간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였다, 내게는. 실제로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처음에 순진하게도800만 원 정도 들여서 정말 고급지게 해 봐야겠다고 혼자 망상질을 했다. , 아니, 아니, 불가능했다. 기본적인 설비들을 갖추는 것도 인테리어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생애 처음으로 알았으니까.

 

나의 꿈을 가득 담은 스케치를 보여주면, 대부분의 인테리어 하시는 분들이 견적을 내보겠다고 하고는 연락들이 없었다. 처음에는 머 이런 경우가 다 있지 했는데, 그런 일을 여러 번 당하고 보니 상황 파악이 되었다. 다행히 최종 결정된 인테리어 실장님이 나의 꿈이 허황되다고 딱지를 놓기보다는,내 예산에 맞게 내가 머라 했든 간에 적당히 중요한 부분만 고려해서 현실적인 도안을 그려 보내주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긴 했다.

다른 분들은 해보지도 않고 나를 포기했던 거다!

도안을 보면서 하나 더하고 둘 빼고 또 하나 더하고 이러면서 처음 생각했던 예산에서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상태에서 결정을 보고 진행했다. 예상보다 돈을 더 들인 것은 “공간 대여”로 해보려는 나름의 투자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사무실 매입 시 내 돈을 거의 들이지 않았던 탓에 여유돈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인테리어 과정을 유튜브로도 올리려고 찍어두었는데, 아직까지 올리지 못하고 있네.

 

4. 유투브 시청

정말 많은 걸 시청했다. 자기계발, 명상음악, 재테크, 정치 이슈와 음모론까지, 아 그리고 그중에서도 애완동물 영상은 내가 더 애정을 갖고 보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랜선 강아지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단순 시간 때우기였다면 오래가지 않았을 텐데, 관심사들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서 꾸준히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먹방이나 신변잡기 영상들은 지속적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유투버들이 독자를 많이 갖고 있는 게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정보나 힐링, 이슈 이런 거에 흥미를 더 느끼는 듯. 지금도 너무 많이 보고 있어서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5.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마도 반성의 영역에 가깝지 싶기도 하지만, 좀더 넓다는 게 정확하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보니,내가 사업을 하면서 무엇을 못했는가에 대한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크게 보면

난 운이 좀 많이 없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사업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핑계다라고 비난받기 쉬운 말이다. 하지만 가볍게 듣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일종의 매우 철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 운이 실력과 만나던지, 자본과 만나던지 그러면 폭발력이 어마어마 해진다. 그리고 실력이 없고 돈이 없더라도 운을 만났다면 그런대로 잘 굴러갈 수는 있다. 다시 말하면 노력이란 자신의 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런 얘기다. 시시한가? 그럼 사업해보고 나서 다시 이 글을 읽어보라.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반성과 운에 대한 생각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였다. 지금도 늘 생각하고 있지만, 사업을 쉬기 시작한 지 한두 달이 지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돈을 깔고 앉아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

Photo by jc_cards on Pixabay

이라는 사실! 법인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통장 정리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조금 웃픈 얘기일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여기저기에 돈을 묻어두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으니까! 여기에 연금 저축 쬐금, 저기 통장에 돈 한 뭉텅이, 이렇게 법인 통장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이 되었다. 완전히 몰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업 정리를 고민하는 동안 이 돈들의 존재를 합산해낼 수 있었다면, 어쩌면 더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모아 놓으니 꽤 많았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몇 천만원이나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 돈으로 사무실 투자하고, 인테리어도 하고, 초기에 생활비로도 쓸 수 있게 되어서, 사업 망한 사람 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은 돈을 흘려 보내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다. 정확히는 순환구조를 만든다가 맞겠지만, 사업 초기에는 그저 흘려 보내기도 해야 한다. 이 점이 내게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지금까지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나는 내게 맞는 중요한 것을 발견할 때까지 새롭게 사업을 시작한다 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6. 경제 공부와 글쓰기

2019년 내내 혼자 이런저런 사부작 거리며 마음 가는 대로 있는 게 꽤나 행복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그런대로 힐링도 되었으니, 이제 머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020년 새해 초반에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고민 끝에 좀 더 나를 채우는데 다시 더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 부분은 코로나 19가 기여한 점이 크긴 했다. 어쩔 수 없었지 않은가? 그래서 지속하고 있는 것이 경제 공부이고,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슨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정리해보는 것을 주제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사업 경험을 정리하는 걸 큰 주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게 마음의 저항이 있는지, 자꾸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서 걱정이기는 하다. 아직까지는 꾸역꾸역 하고 있는 수준이다. 경제 공부는 사업하던 감각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큰 노력 없이 재미를 느끼며 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Photo by Free-Photos on Pixabay

원래는 최소 3개월 정도 이상은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 19 때문에 어렵게 되어 버렸다. 많이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덕분에 상반기에는 혼자 공부는 좀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하반기에는 대학원에도 가고 이런저런 모임에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참석하게 될 것 같다. 모든 게 다 여행 대신이 되었다.



그밖에 프로그래밍 공부처럼 하다 만 것도 꽤 많다. 나는 정말 많이 혼자 사부작 거렸나 보다.정말 쓸데없는 걸로는 게임들이 있다. 불안 장애에 게임들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듯한데, 그래서 많이 한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불면증에는 안 좋은 게 이 게임들이다. 당분간은 위에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며 좀 더 지내게 될 것이다. 코로나코로나 19덕분에 이런 생활이 길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지 않았나 싶다. 1년만 늦게 사업을 정리했다면 어쨌을까 상상하니, 공포가 밀려온다. 다 각자의 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나는 내 운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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