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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일기

악마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by 셜리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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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할 텐데, 오늘 나는 상실감과 분노로 흥분했고, 그다음에는 스스로가 극악스러워졌다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민망함 같은 것들이 밀려들어왔다. 사소해도 내가 노력한 것들이 잘못되거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가 잘 조절되지 않는 탓이다. 어찌 보면 자신을 가엽게 보아야 할 일이지만, 무언가 민낯이 드러난 듯 발가벗겨진 듯 그런 기분이 큰 파도가 지나간 뒤로 남겨졌다.

 

지난 10여 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갖게 된 피해 의식은 가끔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들곤 한다. 실패를 할 때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나는 좀 더 완벽해지려고, 좀 더 능력을 쌓아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렇게 낑낑대며, 하나하나 느리고 더디지만, 무언가를 집요하게 만들어나가다가, 어처구니없는 일로 모든 것이 어그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사업 초반에는 모 저작권협회로부터 무료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사기를 겼었으며, 심지어 저작권 이용료 계약도 못하고 팽당한 적이 있다. 그때 법적으로 해결하거나 대판 싸우기보다는 분노를 삮이며 그냥 넘어가야 했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관련된 증거들은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데, 그 존재가 왠지 위로가 되어서였다. 아직 열리지 않은 나만의 판도라 상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업하면서 나쁜 일들이 어디 그 하나뿐이고, 그런 사람이 나 하나뿐일까. 사업하는 대표들과의 워크숍에라도 참석하면, 아주 무용담이 차고 넘친다. 내게 일어난 나쁜 일들은 종이 문서로도, 컴퓨터 파일로도 그 무엇 하나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리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그런 우울한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늘 보이는 그런 곳에 꽂혀 있다. 대부분 그 자료들을 기분 나빠질까 봐 차마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가끔 시선이 머물기는 한다. 언젠가는 나를 지켜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같은 날 나의 피해의식은 더욱 선명하고 천박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무적의 논리로 상대방을 제압했고, 그들은 항복을 했다. 사실 그저 몇십만 원의 손해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보다는 내 노력이 헛된 일이 되었음을 또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기에, 내게 주어진 약속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삭제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분노로, 당신들 너무 형편없다, 이렇게 밖에 못하냐, 이러니 우리나라 수준이 떨어졌다. 그렇게 자신들의 문제를 고객의 책임으로 전가하냐, 다다다다다....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요, 자식이라는 안내 전화 멘트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상황에서는 되려 분노가 치민다. 나도 소중한 사람이요, 당신들이 남발한 약속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격렬하게 외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이기고도 뒷맛이 게운치 않은 것도 현실이니, 아이러니하고도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언제쯤 이런 사소한 불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나의 인성이 나이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은 오기는 올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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