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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다

[글쓰기31일] 명동은 내 나와바리(?)였어

by 셜리 2022.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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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였던 라떼에는 그랬다. 심심하면 그리 가깝지도 않은 명동을 들락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할일이 없는 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그곳을 쏘다녔고, 상점들의 불이 꺼지기 시작할 때까지 그곳에 머문 적도 상당히 많았다. 그곳에서 도대체 무얼 하느라?

아.이.쇼.핑.

요즘도 이런 말을 쓰지는 모르겠다. 아이쇼핑은 콩글리시니, 정확히는 윈도우 쇼핑이 맞겠지. 주머니가 가벼웠던 20대 학생 시절로 비싼 옷들을 혼자서 턱턱 살 수는 없었기에, 주로 눈요기 목적으로 명동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때는 또 연예인들이 입을 법한 예쁘고 화려한 옷에 대한 욕망도 강렬했던 시절이라, 아이쇼핑은 일종의 대리 만족 행위였다.

 

그렇게 눈요기를 자주 하다가 점점 대담해져서 한 옷가게에서만 열 벌을 입어제껴보고는, 부러 없는 색상의 옷은 없는지 물어거나, 작은 단점을 지적하며 "안타깝지만 좀더 둘러보고 올게요"라는 빈 말을 날리며 가게를 나서고는 했다. 몹시 뻔뻔하기도 했지만, 반면에 그렇게 하려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아이쇼핑 하러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서는 동네 친구까지 두었으니, 그야말로 더욱 당당하게 그러고 돌아다녔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그 친구는 얼마나 따라다니기 힘들었는 줄 아냐, 자기니까 너 따라다녔다, 너는 좀 심하게 지구력이 강하다, 자신이 약한 게 아니다, 등등의 불평을 내게 늘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명동거리를 얼마나 쏘다녔던지, 명동의 브랜드 지도를 망설임없이 그려댈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 한 건물에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하고 카페나 식당이 일부 들어오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였다. 놀랍게도 나는 명동의 대부분의 건물의 층별 브랜드들의 위치를 다 외우고 있었고, 브랜드별 실제적인 고객들의 연령대까지 꿰차고 있었다. 게다가 다수의 브랜드들의 타겟 고객과 실제 고객과의 차이가 나는 것도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있었을 정도. 당시에 내가 보유하고 있던 이 경험과 지식의 가치를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를 되돌아보면,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게 가치 있다고 생각했으면, 패션 계통에서 꽤나 잘 활용해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모순되게도, 나는 명동에서 옷을 산 적은 별로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늘 들르던 옷가게의 점원이 나를 단골 고객으로 착각하면서 친절하게 옷들을 익숙하게 여러벌을 입어보게 해주었다. 속으로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그제서야 들었고,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그 가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옷을 샀던 기억이 있다. 그 가게에서는 그 날이 처음이었고, 그 후에도 자주 들었지만, 살만한 옷은 없어서였다. 아마도 내 옷 욕심은 여러벌 입어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었나보다.

 

Photo by StockSnap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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