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의 캄비아노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3개월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진행했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나의 지도 교수님 회사로 파견되었다. 그 마을에는 교수님 이름이 떡하니 크게 쓰여져 있는 공장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교수님의 부모님 회사 건물이었는데, 내 교수님과 친구분의 회사가 그 공장 한켠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당시에 대학원 내에서 교수님의 별명은 '옥동자'였다. 이탈리아 지방 도시의 유지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그런데, 교수님은 이 별명을 알고 계셨는지는 궁금해지네.
인턴쉽으로 이탈리아를 가기로 결정되었을 때, 준비거리로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이
"3개월 동안 무얼 먹지?"
였다. 이미 먼저 인턴쉽을 갔다온 선배들의 말을 들으니, 마을이 작고 시골이라 별로 사먹을 게 없다고 했다. 할줄 아는 거라곤 밥하고 된장국과 김치찌개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얼 해먹어야 하나하는 고민으로 싸들고 간 게, 간편요리책자였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적절한 재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스파게티 요리였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시도해볼 수 있는 요리 중에는 그게 그나마 쉬워보였다.
처음에는 올리브유를 약간 붓고, 마늘과 양파를 볶다가, 아체티(이탈리안 식초)와 와인을 넣고 좀더 볶은 후에 스파게티 소스를 부어서 요리를 완성했다. 면은 나중에 따로 삶아서 섞었고. 내가 본래부터 스파게티를 몹시 좋아라 했지만, 3개월 내내 이런 스파게티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나만의 꾀는 재료들을 돌려막기식으로 바꿔보는 거였다. 어떤 날은 버섯이나 당근, 호박 등이 들어가고, 어떤 날은 홍합이나 냉동 새우를 넣어 볶아댔다. 또 다른 날에는 사과도 넣어보았다가, 바나나도 넣어봤다. 아, 심지어 딸기도 넣어봤네. 이 중에서 최악은 딸기였다. 물론 그 뒤로 두번 다시 넣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 인턴기간의 대부분을 비록 스파게티만으로 버텼지만, 그런대로 다양한 맛을 실험할 수 있었던 탓에 만족도는 높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나마 잘 하는 요리로 스파게티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당신이 아는 그 스파게티 맛은 아닐 수 있다. 온전하게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스파게티이니. 매우 건강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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