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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일기

긴급 주유 서비스와 깜빡 깜빡 건망증 ㅠ.ㅠ

by 셜리 202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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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경안정제 자낙신 반알을 먹은 탓이다. 전날 파도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기에 불면을 피하기 위해 먹은 것이었다. 그럭저럭 잘 수 있었어서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오늘 아침 내내 약간 멍한 상태라는 것이다. 운전을 하면서

'아, 주유해야지, 아 맞다, 또 잊었네'

를 두어번 했을까, 액셀 클러치를 밟고 있어도 차 속도가 스르르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인도 근처로 슬슬 다가가서 멈출 수 있었다. 4차선 도로 한 가운데서 멈추게 되었다면 어쩔 뻔 했나! 생각만해도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른다.

 

당황한 마음으로 자동차 보험 회사에 전화를 해서 차량번호와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대었다. 내가 가입자가 아니란다. 아차차 작년에 보험사를 바꾼 걸 잊었다. 가만 바꾼 데가 어디였더라?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 오른쪽 자리 수납칸을 뒤지고 뒤져서 간신히 계약서를 찾았다. '그래 여기였지' 확인하고는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전화 번호를 찾아서 걸었지만 또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여기도 내가 가입자가 아니란다. 다시 계약서를 잘 들여다보았다. 맞는데? 이번에는 계약서에 적힌 보험사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상황이 이렇다 하는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자동차 사고 담당 부서로 연결해주겠다고 한다. 순간 열이 올라 소리를 질렀다. 내가 회원이 아니라는데 바꾸면 머하냐고! 전화받는 직원이 얘기한다. 

"손님, 저희는 DB과 아니고 KB입니다."

아하하하,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당황해서 계속해서 엉뚱한 보험사에 전화를 했구나. 빠르게 미안하다고 했다. 소리지른 것에 대해서. 천신만고 끝에 신고하고 10분 정도 기다리니, 기사 아저씨가 와서 3리터를 넣어주시고 갔다. 얼추 돌발 상황이 정리된 것이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7,8년 전이었던가 나이가 20대 후반인 스타트업 대표님이 주유하는 걸 잊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멈춘 얘기를 들을 때 솔직이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짝이다. 신경안정제로 멍한 탓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자괴감이 밀려왔다. 

 

서둘러 주유소를 찾아 들어가니, 직원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굳이 안해도 되는데, 정차 위치를 정해준다. 시키는 대로 주차하고 주유하려니, 주유구까지 줄이 좀 짧다. 그래도 힘들게 구멍에 끼어 맞추어 기름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들어가나 싶더니, 어느새 자꾸 밖으로 넘쳐 흘러나왔다. 어찌할 방법을 모르겠어서 좀전에 주차 위치를 지정해주었던 직원을 불렀다.

"차를 좀더 앞으로 대셨어야죠."

라고 한다. 얼척없다. 그래서 내가 님이 그러셨잖아요~ 했다. 그제서야 미안하다 한다. 그나마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니 다행이다. 그러나 흘린 기름값은 보상해주진 않더라. 오늘 일진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소위 "재수없음"에 대한 켜켜히 쌓인 공포가 있다. 그래서 더 허둥된 것도 있다. 해결하려 해도 해결되지 않고 해결이 또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에 또 빠질까봐 무의식 중에 두려워졌던 것같다. 요 몇년간 힘들게 사업을 하다가 생긴 증세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이런 날이면 좀 맥이 빠진다. 언제까지 이럴 거니 싶어서.  운이 좋지 않다와도 차이가 있다. 운이 좋지 않은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운이 나쁜 건 해결이 쉽지 않아서 삶의 질을 확 떨어뜨린다.

그래도 모든 점에서 운이 나쁜 것은 아니니, 운이 좋은 것에 집중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운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나 무의식은 아는 대로 움직여주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할 때 그렇 듯이, 운이 좋은 것에만 마음을 두고 싶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행할 때는 좋은 것만 마음에 담아진다. 곰곰히 복기하다보면 안좋은 순간도 많았는데, 왠간해서는 좋은 기억을 해치거나 침범조차 못하고는 했다. 아쉬운 순간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삶이 여행 그 자체라고. 그게 날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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