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여름 시작 전이었던가, 음.. 시작이 머였더라. 가물가물하다.
당시에 나는 “한글을 주제로 어떤 컨텐츠나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로 시작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무얼 생각하든, 그걸 세계인이 써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사례들을 조사도 해봤지만, 그 무엇도 “와” 스럽게 보이진 않았다. 괜찮은 게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아니라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상을 하고 있던 2010년의 나는 그야말로 사업 초짜. 프리랜서로 디자인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럴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건 아니었다. 그 동안 사회 생활을 해온 미천한 경험이라도 활용해서 내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걸 해보고 싶었다. 2004년 가을연가의 빅히트 이후로 한류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였을까,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한글에 대한 막연한 끌림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우리 문화를 보는 시각도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 물론 세종대왕님의 대단함도 새삼 더 느껴졌고.
그러던 어느 날에 내가 보는 TV 프로그램 속에서 외국인이 Kpop 한글 가사 밑에 자기 나라 알파벳으로 발음을 표기해서 읽고 있지 않은가? 인터뷰에서 그는 한글 가사를 직접 따라 부르고 싶어서 한글을 아는 지인에게 발음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한글 로마자 표기법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표준으로 규격화된 규칙들도 있지만, 조금씩 변형된 것을 주장하는 다른 규칙들도 있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는 한글 영어 변환을 위해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한글 로마자 표기를 그대로 활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 표기 위주네...”
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밭”의 로마자 표기법은 Hanbat 인데, 외국인이 과연 한밭으로 읽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이다. 핸벗, 행밧, 헌뱃 등등으로 읽을 것 같았다. 짧게 표기하는 데 중점을 둔 규칙들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낸 아이디어는
“글자 하나 하나를 강제로 또박또박 읽게 해주자”
였다. 왜냐하면, 노래 가사를 따라불러야 하니까.
같은 말로 예를 들어, 한밭을 Haan-Baat 으로 표기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발음의 길이는 무시했다. 중요한 건 정확하게 한자 한자 분절음으로 읽게 하자는 거였다. 방향을 그렇게 정하고는 정말 집중해서 자음 모음들의 규칙들을 조금씩 조정하며 정리해 나갔다. 복잡한 연음 규칙들까지 다 정리하느라 2주 정도 걸렸다.
사실은 역으로 외국인이 알파벳으로 적었을 때 한글로 변환해주는 규칙을 만들어보려고 한달 정도 더 삽질(?)을 했었다. 짧게 연구해본 결과로, 너무 변수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걸 다 찾아내기에는 내가 역부족이라는 걸 깨닫고, 바로 포기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잘한 일이다^^
이후로는 “읽기”에 집중한 로마니제이션 규칙들을 좀더 정교하게 수정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개발한 알고리즘이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부분을 검증하는데 시간을 썼다. 쓸 수 있는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서 미국, 캐나다, 스위스, 독일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부탁을 했다. 부탁의 내용은 내가 만든 발음 표기가 된 예문을 읽는 외국인의 음성을 녹음해달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독일인 빼고는 아주 훌륭했다. 모두들 한글을 전혀 몰라도 비교적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다만 독일인의 경우는 어쩔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정확한 모음 발음을 만들기 위해서 h라는 무음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인은 계속해서 “흐, 크” 발음을 섞어내고 있었으니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자를 찾기 시작했다. 정말 간단하게 한가지 기능만 있는 앱을 개발할 것이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생각은 결과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여기서 개발 고생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때 당시에 내가 만든 로마니제이션 알고리즘을 적용할 앱 아이디어는 2가지가 있었다.
- 첫번째는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Kpop의 가사를 영어 알바벳으로 변환해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한글 프로그램 앱(Kpop Lyrics Plus)이고
- 두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이나 문구를 한글로 적어서 스마트폰으로 콘서트장 같은 곳에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둘 중에 어느 걸 먼저 할까 하다가, 가사 읽어주기 앱이 개발하기 쉽다고 생각해서 첫번째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가사 읽어주기 앱 런칭할 때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스타의 이름이나 문구를 적어주는 두번째 앱이 런칭되었다! 그리고 대박이 났다, 으헉. 게다가 초대박! 게다가 많은 다른 개발자들이 비슷한 앱들을 따라서 많이도 출시했었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세상 사는 게 그렇지 머. ㅎㅎㅎ
어차피 아이디어 자체로는 가치도 없고 권리도 없다. 아이디어는 그걸 실천하고 성공시키는 사람의 것이다.
이 와중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내 아이디어와 정확히 같은 아이디어는 아직까지 나오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을 삼았달까.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예상해볼 수 있는 건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안 나온 거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음, 머, 내가 개발자면 아니야, 난 해볼거야 라고 하겠지만, 난 개발자는 아니니까.
사실 이 Kpop 가사 읽어주기 앱(Kpop Lyrics Plus)은 개발 난이도 자체는 쉬웠지만, 저작권이라는 벽이 있음을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에 5,6개월 동안 문제를 해결하느라 극심한 고생을 했었다. 당시의 나는 정말 사업 초자였고, 이 앱은 그냥 심심풀이로 만들어보자…로 접근했던 터라, 더욱 힘들었다.
그 이후로도 내가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런 저런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해보았다. 게다가 사업초짜 였던 당시의 나답지 않게 특허(2013.12월 한글 문자열에 기초하여 영문 문자열을 생성하는 장치 및 방법)로도 등록하였다.
그 중에는 사라진 서비스도 있다. 참 힘들게 개발했었는데….
이 글을 쓰려고 “한글 로마니제이션”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예전에 내가 런칭한 서비스가 보인다. 저 서비스의 주제는 한글 디자인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찡해진다. 버린 자식을 다시 만난 기분이다. 비슷한 경험도 없는데 이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프게 나은 서비스인데 잘 되지 않아서 그런 기분이 드나 보다. 정부지원의 도움을 받아 개발과 런칭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로 자금이 부족해서 사실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만든 서비스들은 아직까지 흥행하지 않았다. 역시 두번째 아이디어로 했어야 했다. ㅎㅎㅎ 그래도 아직까지 첫번째 작품이라는 애정으로 Kpop Lyrics 앱서비스를 아직까지 앱스토어에서 제공하고 있다.
<관련 제품 & 서비스들>
Kpop Lyrics Plus ( Appstore 혹은 Google Play 에서 이름으로 검색 가능)
한글놀이/Hangul Sounds (App Store-앱스티커)
Read Seals (App Store-앱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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